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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자 칼럼(1565) 서울역과 강우규 의사

권희찬 2016. 9. 2. 10:08
#500자칼럼 


최광태의  500자 칼럼 

(1565) 서울역과  강우규 의사

중국과의 축구 3:2로 이긴모양입니다. 후반전 뒷심부족으로 2골이나 내주었다니. 고질적인 마지막 방어를 못해 위태위태한  승리로 끝난것 같습니다. 직접보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서울역앞을 지나다 보면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보입니다. 오늘이 바로  사이토 마코토 신임총독 부임 행렬에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가 거사를 일으킨 그날인 9/2일, 그장소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곳인데 의사의 거친 숨결을 느끼게 합니다.

1885년 함경남도 홍원(덕천) 출신으로,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멸망한 후 가솔을 이끌고 북간도로 건너가, 한인촌을 건설하고 학교를 세우는 등 민족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의거 당일 강 의사는 폭탄을 명주수건에 싸서 허리춤에 차고, 두루마기 차림에 파나마 모자, 가죽신, 양산, 수건등을 갖추고 환영나온 군중틈에 섞여 있었습니다. 당시 나이가 64세였던 강 의사는 의심을 받지 않고 군중틈에 있을 수 있었다. 강 의사는 신임 사이토 총독이 역에서 나와 막 차에 오르려는 순간 폭탄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6~7m 떨어진 거리. 노령인 그의 일격은 자동차까지 도착하지 못한 채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폭탄의 위력도 강하지 못했다. 사이토는 무사했으나 경비하고 있던 일본인과 그 앞잡이 3명이 죽고, 34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입니다. 

거사 뒤 현장에서 유유히 빠져나와서 독립투사집에 숨어있다가, 9월 17일 일제의 앞잡이 김태석(金泰錫)에게 붙잡혔다. 1920년 3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하였습니다.  순국 직전 “단두대 위에도 봄바람은 있는데, 몸은 있어도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으리오”라는 사세시(辭世詩)를 남겼습니다.

2016.09.02.08.10 am
Starbucks, 선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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