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종과 임진왜란 1592 본문
'팩츄얼 드라마'를 표방하는 '임진왜란 1592'란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한다. 썩 끌리는 사극은 아니다.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사극은 많으니까. KBS는 앞서 '불멸의 이순신'이란 사극을 방영했다. '징비록'도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다. 이쯤 되면 진부할 때도 되었다. 1500년대 조선 시대의 상은 미디어가 심어 놓은 기억을 복기하는 것만으로 복원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순신 장군이 불굴의 정신으로 일본군을 무찌르는 장면은 불후의 짜릿함을 주나 딱 거기까지다. 거기엔 어떤 새로움이 없다.
기대되는 건 '최수종'이 이순신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최수종이라. 사극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배우다. 나는 그분을 '태조왕건'에서 '왕건'을 열연할 때 처음 접했다. 그 다음에는 '태양인 이제마'에서 이제마 역할로 나오더라. 그 다음은 '해신'의 장보고였다. 다음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남은 건 '대통령'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저런 우스갯소리가 나올 때 최수종은 '프레지던트' 드라마를 찍으며 정말 '대통령'이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커리어만 보면 그분이 연기한 역사적 인물 리스트 숫자를 따라갈 사람은 없을 테다.
생각해 보니 숱한 인물 중에서도 최수종은 '이순신'과 '세종대왕' 역만은 경험하지 못했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은 가장 존경받는 인물 1, 2위를 다투는 인물이다. 사극에서 차지하는 최수종의 입지를 생각하면 최수종이 그 둘을 연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의외의 일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선 김명민이 이순신역할을 맡았다. '대왕세종'에선 김상경이 세종대왕으로 열연했다. 최수종이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의 역할을 소화하는 일이니 절로 기대감이 몰려왔다. 최수종의 커리어는 이제 1500년대 한 시점으로 향했다. 괜스레 반가웠다.
'해신'과 '수신' 사이의 묘한 연결점도 있을 테다. 장보고가 청해진에서 명성을 떨쳤다면 이순신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공적을 세웠다. 이순신은 명량 해전에서 소름 끼치는 역사를 써냈다. '장보고가 이순신으로 환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묘한 의문에 대한 답을 최수종은 자신의 연기로써 보여줄 것이다. 최수종이 열연했던 '해신'의 장보고의 이미지가 그가 연기하는 '이순신'에 고스란히 반영되리라 생각한다. '임진왜란 1592'의 이순신은 김명민이 연기했던 이순신의 이미지와는, 또 영화 '명량'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수종 씨는 굉장히 흐뭇하리란 생각이다. 내가 최수종이라면 그럴 것 같다. 자신이 연기했던 역사적 인물 리스트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추가되는 일이다. 그 인물이 하필이면 이순신이다. 이제 최수종은 다른 인물이 범접할 수 없는 사극의 영역을 또 한번 개척하게 되었다. 전생이 있다면 최수종은 홍익인간의 뜻으로 하늘에 내려온 단군이 아니었을까 싶다. 웬만한 역사적 인물의 얼굴은 최수종의 얼굴로 환원이 된다. 이순신의 얼굴마저 최수종의 얼굴로 기억되리라 생각하니 어딘가 기분이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