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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국영 몰락에 대한 단상 1, 구월

권희찬 2016. 9. 4. 03:29

홍국영의 몰락에 대한 의문점에 대한 나의 추측들(2016. 02. 현재+ 160812 수정). 이하 내용은 가설이며 계속 수정, 보완되고 있는 중


1. 1778년에 있었던 홍국영의 누이의 입궁은 정순대비가 내린 한통의 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글에서는 간택이 필요한 목적에 대해 '후손을 잇기 위해 후궁을 들인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1778년의 후궁 간택의 첫 절차가 대비의 언문하교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두고 '대비가 왕의 후사 문제에 간섭했다'라고까지 해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이것은 후궁 간택이 사전 조율된 상태에서 궁중의 웃어른인 대비가 국왕에게 후궁 간택을 권유하는 글을 내리면 왕이 이를 받아 짐짓 못 이기는 체하며 간택령을 내리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위한 요식 절차에 불과한 것이다.



이 후궁 간택 권유를 통해 대비는 (마치 현대의 tv 일일 연속극 등에서 여전히 볼 수 있는 할머니 캐릭터들이 하는 것마냥) (일곱 살 연하의) 손자에게 후궁을 들여 아이를 낳아 대를 이어 달라고 조르는 것인데, 여기까지 보자면 뭐, 못 이기는 체 받들 '명분'으로서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는 후궁을 얻어 자손을 얻으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 정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 교서는 실로 이상하다. 굳이 왕비가 불임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조치가 왕비 입장에서는 몹시 굴욕적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설사 왕비가 정말로 임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라 어쩔 수 없이 후궁 간택을 하는 경우라도 글을 이렇게 쓰지는 않겠다. 적당한 미사여구로서 왕실의 간택을 얼마든지 미화할 수 있다. 왜 굳이 왕비가 석녀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떠벌리고 있을까?


이때 대비가 내린 글이 먼저 언문으로 쓰이고 이를 한문으로 번역하여 조정으로 들여 와 읽어 봤다고 전하나, 애초에 대비의 언문하교문의 원본도 대비가 임의로 쓴 것이 아니라 국왕의 의사가 반영되어 미리 조율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잘 알려져 있듯 수 년 전 발견된 정조의 비밀 어찰 중에는 신료들이 낼 상소의 초안을 정조가 직접 제시한 경우도 있었다. (다만 정조 10년의 정순대비의 언문하교는 정조의 뜻이 아니었다고)


2. 이듬해 원빈 홍씨가 죽었는데, 이후 홍국영 자신과 그의 당여들의 입을 통해 계속해서 임금에게 권유하기를 '새 후궁을 간택하라'고 하고 있다. 유명한 송덕상의 모양도리 상소에도, 홍국영의 치사상소에도 그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미 후사를 이으려고 후궁을 들였잖은가? (기억나지?) 근데 먼저 뽑은 후궁이 죽어 버렸네. 그럼 새 후궁을 다시 뽑아야지. 그래서 그 후궁이 낳은 아이로 대를 이어야지" 하는 식이 당여로 알려진 두 사람의 상소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나는 홍국영의 치사 상소를 글 내용 자체만 가지고 따진다면 그 글의 주제는 '임금께 후궁을 새로 뽑으라는 권유'로 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후 홍국영은 선마하는 날에도 후궁 얘기를 하고, 홍국영 은퇴 후 정승의 자리에 오른 백부 홍낙순도 계속해서 조카의 뜻이라며 후궁 얘기를 한다

홍국영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를 써서 새 후궁을 뽑으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것일까? 왜 하필 그 민감한 시점에서 후궁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3. 홍국영의 유명한 1779년 9월 26일 치사 상소에서 홍국영이 실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얼까? 오늘 이후로 조정에서 물러나 다시는 나랏일에 관여하지 않을 것인데,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새 후궁을 맞아들여라. 그리고 그 후궁을 통해서 애를 낳으라는 말이니까, 정리하자면 후계자를 새 후궁을 통해 얻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나는 홍국영이 저 유명한 1779년 9월 26일에 올린 치사 상소의 진짜 목적은 왕비에 대한 견제라고 생각한다.

4. 새 후궁을 맞이하라는 권유가 왜 왕비에 대한 견제로 이어진다는 걸까? 요즘 이런 거 많이 하더라. 원빈 홍씨가 죽음으로 해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결과적으로 정말 홍국영이 의도한 대로 '새 후궁'이 최종승자가 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는 한데. 그 "새 후궁"이 없는 상태라면?

5. 처음에 밝힌 원빈 홍씨 간택 절차의 시작에서 등장한 '왕비가 불임이다' 하는 기술의 사실 여부와, 혹은 불임이 사실인 경우에 그걸 공개적으로 밝힌 게 부주의함 때문인지 의도적인 것인지 여부가 관심사이다.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 우리가 이 사실 자체에 대해서 단언적인 결론을 얻기는 매우 곤란할 듯 하다. 다만 홍국영이 굉장히 애를 써서 새 후궁, 새 후궁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다.

후대인들은(나도 오랫동안 그랬지만) 정조의 이른바 '새 후궁'들이 원빈 홍씨가 죽었기 때문에 당연 후속 조치로 입궁했다고 여긴 경향이 있었는데, 홍국영이 이렇게 애를 써서 새 후궁을 맞아 들이라고 하는 것은 1779년 6월~10월 사이에 그 조치가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 상황으로 추측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

6. (그러니 대담한 추측들을 전제로 했을 때의 결론이지만 똥은 왕이 왕비한테 던진건데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이 똥이 홍씨 남매들한테 튄 건 아닐지.)

7. 홍국영의 몰락에 대해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알려져 있던 내용은, 바로 9월 26일의 치사 상소가 실은 정조의 결단으로 홍국영을 정계에서 은퇴시켰다고 하는 부분이다. 겉보기에는 홍국영이 자진 사퇴를 청하지만 실은 정조가 물밑 교섭으로 요구한 것이고 자진 사퇴의 형식만 갖췄다는 것이다. 3.의 가설 즉, 이 치사 상소 자체가 왕비 김씨를 견제하는 의도였을 것이란 가설을 염두에 두고 나니 연달아서 드는 생각이, 그렇다면 이 유명한 상소가 "진짜" 홍국영의 자진 사퇴 상소라고 추측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즉, 홍국영이 왕비를 견제할 목적으로 자기 자리를 걸고 시위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2월에 쓰기 시작한 건데 지금은 8월?


죽기 전에 마무리할 수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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