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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쫄보,

권희찬 2016. 9. 3. 06:28

안녕하세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입니다.
서두에 이렇게 인사부터 올리는 거 보면
이제 슬슬 감이 오시죠?
무언가를 또 체험했습니다.
 

  
오늘의 대상은 바로
<라이트 아웃> 입니다.
체험기라니,
다이애나랑 셀카라도 찍었냐고요?
아뇨.
그냥 영화를 봤습니다.
근데, 다짜고짜 웬 체험기냐고요?
사실 전 공포영화를 정말정말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심은하 주연 드라마 <M>의
녹색 눈의 심은하를 본 이후
호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거든요.
제 의지로 극장에서 본
마지막 공포영화가
고2 때 야자 빼먹고 본
<장화 홍련>입니다.
목적은 하나였죠.
문근영.

덕분에 저는 썸녀가 꺄악~ 하며
제 품에 폭 안기는 메리트 같은 건
한번도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음...
제가 우아아아~ 하며
여자친구한테 안겨본 적은 있네요.
화면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지나갔어? 지나갔어??"
물어보던 저는 얼마나
머저리 같아 보였을까요.


아무쪼록 이번 체험기는
"공포영화 쫄보,
심야영화로 <라이트 아웃>
눈 감지 않고 끝까지 보기"
정도로 부르시면 되겠슴다.

***
<라이트 아웃>의
세부적인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


시각은 23시 10분 경,
저희 집과 가장 가까운 영화관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입니다.
백화점 안에 입점된 영화관이라
평소엔 엘리베이터 기다리느라
영화 시작 시간을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이날은 아주 편히
극장으로 올라갔습니다.


극장 로비도 아주 한산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로비까지 꽤 긴 거리인데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더군요.
하긴,
영화 글 쓰며
밥벌어 먹고 사는 저조차도
이 시간대에 영화 보러 온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

인증샷 용도로
티켓을 뽑아봤습니다.
멀티플렉스에서 종이티켓을
발권 받아본 건 또 오랜만이네요.
요즘은 세상이 좋아서
그냥 극장 앱만 쓱
보여주면 되잖아요.
일일이 예매번호 누르고
티켓을 뽑으려니
은근 귀찮더군요.
그러고 기껏 나온다는 게
저런 영수증 같은
종이 쪼가리라니.

이 날 영화를 본
313석 짜리 관입니다.
부러 큰 관을 택한 건 아닙니다.
어차피 눈 감지 않고
보는 게 목표인지라
작은 스크린을 원했건만
<라이트 아웃>이
요즘 흥행 중이라 그런지
저렇게 큰 관밖에 없더라고요.


저렇게 넓은 공간에
딱 9명의 관객들이 드문드문
앉아 계셨습니다.
저 분들은 어인 일로
이렇게 늦은 시각에
영화를 보러 오신 걸까요?

옆에서 팝콘 먹는 소리도
신경쓰이는 예민남이라
원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곳을
선호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혼자 외딴 곳에 앉으면
더 무섭게 느껴질 거 같아
저어기 세 일행이 모여 앉은 곳
근처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엔  이와 같은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네,
맨발로 앞좌석에
발을 올려놓고 계신
진상님 맞습니다.
음....
영화 보다가 기절했으면 했지
저 꼬라지는 볼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하는 수 없이 자리를 옮겼죠.

평소 같으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볼 시각이라
살짝 몽롱하던 참이었는데
순간 부아가 치밀어오르면서
잠이 확 깼습니다.
괜히 "귀신 따위 별 거 있겠어?"
하는 여유마저 생겼습니다.


마침 스크린에는
잿빛의 워너브라더스 로고가
떠오르고 있었죠.


드디어 영화가 끝났습니다.
아무래도 러닝타임이
81분밖에 안 되니
금방 끝나긴 한 거 같네요.
휴대폰을 켜니 1시를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쏘쏘 입니다.
좋았던 점과 별로였던 점이
분명했달까요.
현지에서의 호평들과
하도 많이 놀래서
팝콘을 거의 다 쏟았다는
위트 섞인 칭찬을 보며
기대치가 한껏 뛰어올랐으니
구태여 따지자면
실망스러웠다는 편이 더 맞겠네요.


거두절미 프롤로그부터
귀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 시작 3분 만에
그 실체가 등장하죠.
불이 꺼지면 나타나고
켜지면 사라진다는
콘셉트의 힘을
을씨년스러운 마네킹 창고를
통해 제대로 전달했죠.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기대를
확실하게 끌어 올려놓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별안간 불이 꺼지고
어디선가 나무를 긁어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저 어둠 속에 누군가가 보입니다.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하며
점점 다가오는 그 모습은
언제 봐도 적응 불가한
공포의 클리셰인지라
매순간 관객의 숨통을 조이죠.

다만 문제는 영화가
빛과 어둠에 따라
악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콘셉트를 활용하는 데에만
열중한다는 점입니다.
공포의 대상을 드러내는
방식이 한정되어 있으니,
다이애나에게 점점
내성이 생깁니다.



어둠에서만 드러나기 때문에
다이애나의 모습은
그저 시커멓기만 합니다.
징그럽거나 섬뜩하거나
귀신의 모습이 강렬해야
등장을 거듭하며
공포도 더해질 텐데,
<라이트 아웃>의 다이애나는
러닝타임 대부분을
부스스한 머리와
길고 축 늘어진 손이
고작 실루엣으로만
제 모습을 드러낼 뿐이죠.

허를 찔린다는 느낌이
부재하다는 건 <라이트 아웃>의
또 다른 단점입니다.
그에게 맞서는 주인공들은
진실에 한발한발 다가가며
점차 대담해지는 한편,
다이애나의 공격 패턴은
늘 똑같습니다.
불 꺼지면 보이고,
불 켜면 없어졌다가,
갑자기 발 구르는 소리가
막 주변을 울리다가
위에서 확 나타나는 식이죠.

그건 그렇고,
눈 가리지 않고 보겠다는
미션은 달성했냐고요?

아니요....
다이애나가 처음 나오는
3분 만에 필기하던 수첩으로
시야를 반쯤 가리고 말았습니다.
ㅠ _ ㅠ

근데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구구절절 떠들어댔냐고요?

죄송합니다...
TT  _  TT


영화 보다가 그렇게 팝콘을 쏟는다고
소문이 나더니만,
제가 본 상영관 역시 저렇게
팝콘의 잔해가 널려 있었습니다.
관객들이 이미 극장을 뜬 후여서
영화의 콘셉트에 맞춰
플래시를 켜서 찍어봤습니다.


아무도 없는 극장입니다.
눈 씻고 봐도
나무 따윈 없는 공간인지라
나무 긁는 소리는 안 나더군요.

막다른 출구가 있길래
슬쩍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괜히 뭐라도 나올까 싶어
  겁먹고 포기했습니다.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
<거울나라의 앨리스> 구조물 앞에서
셀카 한 컷.
새벽까지 깨어 있는
꾀죄죄 오징어 같은
제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공포네요.

음...
근데 제 옆에 손가락은 뭐죠?


건물에서 빠져나오니
바깥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에필로그 격으로
길에서 본 풍경을 첨부합니다.

전구가 3개나 달려서
다이애나는 얼씬도
못할 것 같은
수퍼마켓.


목이 잘린 듯한 십자가를 보며
"내일 아침 지각하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했습니다.
에이맨.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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